사람들의 내면엔 이미 불성이 있어요. 사람들이 그 불성을 깨닫기 시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죠. 성불을 해야 비로소 부처가 되는 게 아니에요. 단지 불성을 아직 깨닫지 못 한 것뿐이죠. 그래서 자신들이 부처란 사실을 모르는 거예요. 허나 그 불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요. 그들이 그걸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똑같아요. 그들은 여전히 우리와 동등합니다. 그러니 내가 평등하지 않은 방식으로 가르치기 시작하면 나중에 어떻게 그들에게 평등을 가르칠 수 있나요? 그런 뜻이에요.
그런 연유로 나를 따르는 출가자들도 그렇게 했죠. 그들은 어울락(베트남)이나 중국처럼 내가 현재 갈 수 없는 곳으로 보내졌는데 그러면 그곳 사람들이 이 출가자들에게 부처님께 절하듯 절을 했죠. 그러자 출가자들은 두려워하며 옆으로 피하거나 뒤로 물러났어요. 때로 그들은 『계속 그렇게 절하면,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협박까지 해야 했죠. 잘 한 거예요. 그렇죠? 그들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뜻이죠.
어떤 출가자든 만약 사람들이 그렇게 깍듯이 절하는 걸 받아들였다면, 그 순간 끝나는 거예요. 순식간에 끝장나죠. 우리의 공덕은 적은데 에고가 커지면 공덕이 즉시 소멸될 거예요. 그 때문에 수많은 제자들이 떠나거나 낙오하게 됐죠. 그들이 내게 출가를 하면 나는 때때로 그들을 여러 장소로 보냈는데 사람들이 그들에게 절하며 지나치게 존경을 표하니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때로 그들은 충분히 빨리 반응하지 못하고 거기에 걸렸죠. 그래서 실패했어요. 첫째, 만일 그들이 실패하고 (우리 단체를) 떠난다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죠. 그게 문제죠. 둘째, 사람들이 그들을 너무 사랑하는데, 때로 그들은 그걸 개인적인 사랑으로 착각해요.
왜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할까요? 그건 우리의 도덕성과 내면의 빛을 사랑하고, 신과 부처에게서 우리에게 전수되는 축복의 힘을 사랑하는 거예요. 그 힘 덕분에 우리가 나가서 입문을 시킬 수 있는 거죠. 입문식 때, 스승의 힘이 여러분에게 전해지는 거예요. 이 육신의 스승이 아니라 내면의 스승이요. 『내면의 스승』이라 했어요. 그걸 기억하세요. 스승에게서 나오는 힘이 그들에게 전해지면, 그때 그들(관음사자들)은 신과 부처님의 일종의 대리자가 되는 거예요. 사람들이 그들, 그 힘, 신과 부처님에게서 오는 무한한 자비를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그들은 착각을 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개인적으로 사랑한다고 믿게 되는데, 그게 바로 그들의 몰락이죠. 또한 여러분, 새 입문자들도 때로는 스승인 나를, 1.4미터쯤 되는 이 작은 여자를 사랑한다고 착각을 하죠. 그게 아니죠. 알겠어요? (네)
스승은 내면에 사랑을 담고 있을 뿐이죠. 그래서 여러분은 이 육신을 봤을 때 나를 사랑하게 되고 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늘 여러분을 만나주길 바라게 되죠. 진실로, 그 대상은 이 육신이 아니라는 걸 이해해야 해요. 그래야 오해로 인해 떨어지는 일이 없을 거예요. 예를 들어, 여러분 같은 재가 수행자들에 대해 말하자면, 예전에 우리가 아직 머리를 깎고 있었을 때는, 출가자들과 재가 수행자들 사이에 구분이 있었어요. 방금 내가 『재가자들』이라고 한 건 그 차이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더는 차별하지 않잖아요? 나도 여러분 모두와 똑같죠. 그게 더 단순하고 쉬워요. 반면, 어디를 가든 항상 다르게 보인다면, 너무 어색하고 사람들과 대화하기도 어려워요. 관리들과 이야기할 때도 정말 힘들죠. 그렇죠? 그들이 나를 의심쩍게 보기도 해요. 내가 무슨 감옥에서 막 나와서 머리를 완전히 삭발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죠. 좀 어색해 보였어요.
또한 때로 머리를 삭발한 채 기독교 나라에 가면,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아마도 그녀는 우리나라를 불교 국가로 개종시키려는 걸 거야』 그들은 우리가 차별하지 않는다는 걸 몰랐어요. 사람들은 보통 외모만 보고 판단하죠.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보이는 게 『일』을 하기엔 더 쉬워요. 이 직업은 수행하기가 어렵거든요. 만약 쉽다면, 『일』을 하기도 더 쉬웠겠죠. 여러분 이제 이해했죠? (네, 이해했습니다) 보통은 그런 식이에요. 그래서 예전에 출가자와 재가자를 구분하던 시절에는 겉모습도 따졌어요. 그런데 간혹 출가자가 아닌 경우에도 입문자들이 어울락(베트남)으로 돌아가면, 때때로 사람들은 그들이 마치 살아 있는 부처님인 것 마냥 그들에게 절을 하기도 했죠. 이들을 보살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안 그래요? 그곳 사람들은 정말 기뻐하며 그들을 몹시 존경했어요.
그러니 스승을 가까이에서 따르며 공부하고 출가한 이들이 밖에 나가면, 당연히 사람들이 그들을 등에 업고 어깨에 지고 머리 위에 올려 숭배하려 했겠죠. 그래서 이 출가자들은 몹시 두려워했죠. 아는 사람들은 정말 두려워해요.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매우 두려워하죠. 반면에 잘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곧바로 떨어져요. 사람들이 두세 번만 절해도 그들(관음사자들)은 바로 떨어지죠. 그들은 돌아오자마자 말투부터 달라졌어요. 마치 자신들이 대통령이라도 된 듯이 말했죠. 『이젠 내가 대통령이다』라는 태도였어요.
나는 그들이 조만간 떨어질 거라는 걸 알았고 실제로도 그랬어요.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떨어지죠. 나의 충고를 귀담아들으면 아직은 기회가 있죠. 자신의 약점을 안다면 아직 희망이 있는 거예요. 하지만 나의 충고를 듣지 않으면 끝이에요. 완전히 끝장나는 거죠. 그들이 그걸 자각했을 땐 이미 2년, 3년, 4년, 5년이 지난 뒤이죠. 아니면 적어도 4~6개월은 지났고 그 사이에 이미 멀어졌죠. 밖에서 오래 있을수록 그들은 출가자의 길에서 더 멀어지게 돼요. 공덕도, 출가자의 길도 이미 끝나 있죠. 다른 길로 접어든 거예요. 돌아올 수도 있지만 상관없어요. 이미 떠났다면 뭐 하러 다시 돌아오죠? 왔다 갔다 하면 혼란만 생겨요. 그렇죠? 그런 거예요.
중국 출가자들은 어울락(베트남) 출가자들만큼 많이 떨어지진 않았어요. 스승을 따라 출가한 어울락(베트남) 입문자들은 잘 익은 무화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우수수 떨어졌어요. 왜일까요? 어울락(베트남) 사람들은 스승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거든요. 둘째, 그 출가자들은 수행상의 함정들을 아직 몰랐어요. 그들이 어울락(베트남)에 가면 그곳 사람들은 정말 기뻐했죠. 출가자가 어울락(베트남)으로 파견되기라도 하면, 그곳 사람들은 매우 기뻐했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스승을 볼 수 없었고, 스승을 만날 희망조차 없었으니까요.
아직은 내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죠. 돌아가면 나를 죽일까 봐 두려워서가 아니에요. 아마 그들은 감히 나를 해치지 못할 거예요. 나를 죽이면 나쁜 평판만 얻게 될 테니까요. 뭐라고요? (문제 생기길 원치 않죠) 문제가 생길까 봐 그렇죠. 문제를 원치 않는 거예요. 나를 계속 들락날락하게 하면서 심문하면 피곤하죠! 그게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내가 고향에 돌아가더라도 동료 수행자들이나 동포들에게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되죠. 그저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입증하려고 돌아가지는 않을 거예요. 내 나라나 동포들, 적어도 입문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때는 돌아가야죠.
내 가족에 대해서는… 글쎄요. 그냥 노부부세요. (스승님의 부모님) 그분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세요. 이미 연세가 많으시거든요. 죽음도 더는 두려워하지 않으시죠. 그들을 체포한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분들은) 이미 여든이 넘으셨는데 뭐가 두렵겠어요! 어차피 조만간 천국에 가실 텐데요. 게다가 부모님께선 현재 하루 종일 명상하시며 자주 불국토를 방문하시기 때문에 더 이상 두려운 게 없으세요. 기껏해야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나시게 되는 것뿐이죠. 특히, 우리 부모님은 명상하실 때 밝은 빛을 보시고 불국토를 자주 방문하세요. 그래서 두려움이 없으시죠. 그분들이 뭐가 두렵겠어요? 오히려 내게 더 빨리 떠나게 해달라고 하신 적도 있는데 난 서둘지 마시라고 했어요.
내 말은 그런 뜻이에요. 그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세요. 내가 약간의 도움도 드렸어요. 한 달에 미화 100~200달러면 부모님 또는 가족 전체가 살아가기에 충분해요. 어울락(베트남)에선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거든요. 그러니 나도 자식의 의무는 다 한 셈이에요. 내가 부모님을 너무 등한시한 건 아니에요. 가끔 부모님이 잠깐 나를 보러 오고 싶다고 하셔도 괜찮았어요. 이미 연세가 많으셔서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죠. 오시도록 두는 게 낫죠. 아니면 (정부 입장에서도) 더 번거롭거든요. 부모님이 못 오시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괜히 말썽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까요. 그들이 내 부모님을 보내 준다면 적어도 좋은 평판을 얻게 될 테고요. 내 말은, 부모님이 허락을 받으면 좋다는 뜻이에요.
근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죠? 아! 어울락(베트남)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요. 그러니까, 내가 돌아간다고 해도 가족만 만나러 가는 거예요. 그건 아마 정부도 막지 않을 거예요. 아니면 사람들이 그들을 『비인도적』이라고 낙인찍을 테고 그들은 나쁜 평판을 얻게 되겠죠. 그러니 내가 돌아가는 걸 막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곳에 돌아가는 일이 나와 내 가족에게만 이익이 된다면, 내가 돌아갈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나는 내 가족을 위해 영적 수행을 한 게 아니잖아요. 내 가족은 이미 혜택을 받았어요. 다들 입문했고, 비건이 되었고, 오불 명호도 받았어요. 가족 모두가요. 사돈들도, 아이들도 다 입문했어요. 사돈들, 아이들, 내 부모님, 손자들까지 이미 다 입문했죠. 그런데 내가 무슨 이유로 그곳에 다시 돌아가겠어요?
구원이란 영혼들을 구하는 거예요. 단지 그곳으로 돌아가서 육신을 만나고 서로 껴안으며 아주 좋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죠? (네) 그래요! 그런 거예요. 나는 이미 자식의 의무를 다 했어요.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영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효도를 다했으니 가족을 만나러 어울락(베트남)에 다시 돌아갈 필요는 없죠. 어쩌면 부모님이 본향으로 돌아가실 때는, 내가 돌아가야 할 수도 있겠죠. 그런 경우에만요. 그 외에, 내가 돌아가는 일이 제자들이나 동포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뭐 하러 돌아가겠어요? 내 말 이해하나요? (네, 이해합니다) 그게 다예요.
중국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입문자들이나 시민들을 공개적으로 만날 수 없을 거예요. 따라서 내가 그곳에 가는 것은 아무런 이점이 없어요. 그래서 그 두 나라 사람들은 갈망이 정말 커요. 그래서 출가자를 그곳에 보내면, 사람들은 마치 진짜 부처님께 절하듯이 절을 올려요. 그리고 가끔은 그 출가자에게 묻기도 하죠. 『와! 얼마나 오랫동안 수행하셨어요? 출가한 지 얼마나 오래되셨나요?』 『1~2년밖에 안 돼요』 『세상에! 1~2년밖에 안됐는데 벌써 이 정도라고요? 맙소사!』 그래서 사람들은 그 출가자에게 절을 해요. 지나치게 절을 해서 그 출가자가 떨어지죠! 절한 사람은 공덕을 얻지만, 절을 받은 사람은 추락합니다. 너무 빨리 추락해서 구제할 틈이 없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사실 우리 입문자들은 내면이 안정되어 있어요. 가끔 실수를 하긴 하지만, 곧바로 알아차리니까 괜찮아요. 다만 그들의 시간이 허비되죠. 혹은 내가 어울락(베트남)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믿음직한 조력자 한 명을 잃게 되기도 하고요. 난 출가한 어울락(베트남) 제자가 상대적으로 적거든요. 이제 여러분은 자유로운 나라에 왔으니 열심히 돈을 벌어서 어울락(베트남)에 있는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내서 도와주세요. 왜냐하면 모두가 출가를 해버리면, 집에 남은 사람들이 불쌍하니까요. 그게 다예요.
진짜 자유로운 입문자들만 출가할 수 있어요. 하지만 모든 출가자들이 나를 따라 법을 전하는 일을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녜요. 세속 사람들과의 인연도 있어야 하고, 소통 능력도 좋아야 해요. 말을 잘못하면, 오히려 나의 가르침에 해가 될 수 있어요. 때로는 내 제자들이 말을 제대로 못해서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기도 해요. 때때로, 많은 입문자들이 밖에 나가서 자기 친구들에게 스승이 얼마나 훌륭한지 말해주고 싶어 하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사람들을 더 짜증나게 하고 심지어 스승을 비방하게 만들기도 하죠. 나중에, 나를 비방했던 사람들이 우연히 내 책이나 녹음 테이프를 접해서 듣고는 이렇게 말했어요. 『왜 당신의 스승님처럼 말하지 않았죠? 당신 스승님의 말씀에는 바로 수긍이 갔는데, 당신이 말했을 때는 너무 듣기 싫었어요』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여러분 때문이기도 해요. 때로는 여러분이 나와 다르게 말할 때도 있어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너무 투박하게 직설적으로 말해버리니까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죠. 우리가 미신에 관련됐다고 잘못 생각해서 오해가 생기기도 했죠. 그래서 때때로 외부인들이 나를 오해하더라도 나는 그들을 전혀 탓하지 않아요. 그들이 나를 오해할 수도 있는 온갖 상황들이 있다는 걸 알아요. 외부 사람들부터 내 제자들까지 온갖 상황들이 존재하죠. 그러니 그들만 안 된 거죠. 그러니 말을 잘 못하겠으면 말하지 않는 게 나아요.
사람들을 돕고 싶다면 천천히 해야 해요. 먼저 자기 자신을 도우세요. 우리 자신을 먼저 향상시키는 게 나아요. 그렇지 않으면 첫째, 여러분이 떨어질 수 있고 둘째,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나를 오해하고 심하게 비방했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지쳐요. 우선은 지쳐서 그만두고 그 다음에는 결국 이해하게 되죠. 지금은 내 제자가 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가 입문식 때 나한테 계속 사과하러 오곤 했어요. 『죄송해요. 지난 3년 동안 스승님을 비방했어요』라고 말하면서요. 난 말했죠. 『지나간 일은 그냥 잊으세요』 아니면, 내가 어쩌겠어요? 자기 제자에게 복수할 수는 없잖아요. 안 그래요? 그때 복수했다면 아주 통쾌했겠죠. 그렇죠? 『이제 내 손아귀에 있으니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밖으로 끌어내서 호되게 혼내 줄까요? 하지만 됐어요. 그들이 나를 비방했을 당시에 내가 뭐라하지 않았다면 그걸로 끝난 거죠. 이미 지나간 일이죠. 이제 비방하는 걸 멈췄는데 뭐 하러 계속하겠어요? 우린 언제든 멈출 수 있어요. 그냥 잊어버리세요!
어떤 사람이 복수하려고 다른 사람을 억압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그 억압당한 사람은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그는 권력과 부, 명예를 갖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상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요. 이 사람이 공격을 당했을 당시에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었고 가난하고 약해서 맞설 수가 없었어요. 상대는 부유하고 권력도 있고 영향력까지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 사람은 원한을 꾹 삼킨 채 자신이 성공할 날만 기다렸어요. 상대에게 복수하려고요. 이 억압당했던 사람이 마침내 성공했을 때쯤, 예전에 그를 억압했던 상대는 가난하고 굶주린 처지가 되었어요. 상황이 뒤바뀐 거죠. 그 사람은 이제 약하고 의지할 데도 없었죠. 그러자 억압당했던 쪽에서 이제는 복수하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누군가가 물었죠. 『그 사람이 예전에 당신을 억압하고 때리고 엄청 부당하게 대했는데 왜 복수하지 않는 거죠? 그때는 복수할 수 없었다 해도 이해가 되지만, 지금은 힘과 권력이 다 있는데, 왜 복수하지 않는 거죠?』 그 사람이 답했어요. 『전에는 내가 약했고 날 지켜줄 사람도 없고 힘도 없어서 복수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복수했더라면 나는 죽었겠죠. 이제는 복수할 수 있어요. 상대가 약해져서 내가 복수할 수 있죠. 하지만 그건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거잖아요. 그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요. 됐어요. 이제는 복수하고 싶지 않아요』
어쨌든 괜찮으니, 잊어버려요. 매번 나는 그냥 잊어버리죠. 그게 올바른 길이에요. 그게 정말 옳고, 관음 수행자에게 걸맞은 길이에요. 영적 수행자가 아닌 사람들은 각자 자기 일이 있으니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지만, 우리는 수행자라서 그 누구에게도 복수하지 않죠. 그렇죠? (네) 하지만 외부 사람들은, 마음대로 하게 두세요. 우린 상관하지 않아요. (네) 그것은 그들이 제 할 일을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경찰은 도둑과 강도를 체포할 의무가 있죠. 우리는 거기서 『왜 경찰 열 명이 한 사람을 억압해요?』라고 하지 않아요. 그 사람은 아주 나쁜 사람이잖아요. 예를 들면요. 살인자와 강도가 있는데 경찰이 없다면 모두 죽게 될 거예요. 그렇죠? 우린 거기 서서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아요. 『총 든 경찰 열 명이 한 사람을 억압하고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죠. 경찰이 누군가를 체포하는 걸 봤다고 해서요. 그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사람을 죽였어요. 예를 들면요. (네)
그러니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지 마세요. 수행자인 우리들의 의무는 달라요. 다른 사람들은 영적 수행을 하지 않고, 그저 자기가 할 일을 하는 것뿐이죠. 그들이 안 좋은 일을 한다 해도 그들의 일이에요. 우리가 나서서 그들이 나쁘다고 할 필요는 없어요. (네) 누군가는 그런 안 좋은 일들을, 소위 말해 불쾌한 것들을 제거하는 일을 해야 하기도 하니까요. 정말 어려워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제대로 가르치고 설명해야 해요. 안 그러면 여러분은 『스승님이 그렇게 가르치셨다』고 하면서 무턱대고 밖에 나가서 그대로 행할 테니까요. 상황마다 다 다르니까 융통성을 발휘해야 해요. 스승님 말씀이라면서 무턱대고 행동하면 안 돼요. 스승은 그리 말하지 않았죠.
사진: 황량한 시기에도, 늘 밝은 희망의 빛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