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한국어
  • English
  • 正體中文
  • 简体中文
  • Deutsch
  • Español
  • Français
  • Magyar
  • 日本語
  • 한국어
  • Монгол хэл
  • Âu Lạc
  • български
  • Bahasa Melayu
  • فارسی
  • Português
  • Română
  • Bahasa Indonesia
  • ไทย
  • العربية
  • Čeština
  • ਪੰਜਾਬੀ
  • Русский
  • తెలుగు లిపి
  • हिन्दी
  • Polski
  • Italiano
  • Wikang Tagalog
  • Українська Мова
  • 기타
  • English
  • 正體中文
  • 简体中文
  • Deutsch
  • Español
  • Français
  • Magyar
  • 日本語
  • 한국어
  • Монгол хэл
  • Âu Lạc
  • български
  • Bahasa Melayu
  • فارسی
  • Português
  • Română
  • Bahasa Indonesia
  • ไทย
  • العربية
  • Čeština
  • ਪੰਜਾਬੀ
  • Русский
  • తెలుగు లిపి
  • हिन्दी
  • Polski
  • Italiano
  • Wikang Tagalog
  • Українська Мова
  • 기타
제목
내용
다음 동영상
 

모든 만남에서의 스승님의 사랑과 지혜, 12부 중 10부

내용 요약
다운로드 Docx
더보기

만족하나요? 아니면 다시 물어보세요. (감사합니다) 좋아요, 천만에요. 그럼... 더 잘 이해하도록 한 가지 더 말할게요. 가령 과거에, 이 세상은 매우 원시적이었지요? 동굴에서 살며 (동물 주민) 생고기를 먹고 그랬죠. 불을 피우는 방법조차 몰랐습니다. 도구도 전혀 없었는데 점차 더 많은 깨달은 스승이 이 세상에 왔지요. 주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도 깨달은 스승이 많이 있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도 깨달은 스승이 많이 있었어요. 그분들이 차례로 한 분씩 오셨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지는 않았지만, 어디서 말씀하시든 전 세계에 울렸습니다… 그 진동은 퍼져나갔어요. 그래서 전 세계가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이 세계는 계속 점점 더 발전했습니다. 그걸 볼 수 있죠. 그렇죠? 오늘날, 이 세계는 이삼천 년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편리해졌습니다.

이제 내게 질문하지 말아요: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거야? 소말리아 사람이 여기서 스승님이 하신 말씀을 어떻게 듣지?』 전화를 사용해 여기서 당신과 대화하면 들을 수 있죠. 대만(포모사)에서도 나를 들을 수 있죠? 그래요! 이해되죠. 전화가 무엇인가요? 여기서 말하면 저 너머에서 들을 수 있음을 증명하는 물질적 도구입니다. 전화기가 없다면, 들을 수 없을 거예요. 내가 여기서 말하면, 당신은 대만(포모사)에서 내 말을 들을 수 있어요. 다행히도 지금은 전화가 있어요. 이제 이해되지요. 소말리아 사람이 내 말을 듣지 못한다고 할 순 없고 영혼은 전화기가 필요 없죠. 이 전화기는 전 세계가 내 말을 들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위성도 있죠. 미국인이 달에 갔을 때 우리는 여기서 그들과 연락할 수 있었어요. 그런 도구 덕분에 그가 우리 말을 들을 수 있죠. 왜 그럴까요? 우리의 이 목소리가 우주 전체에 진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몸과 말, 생각이 아주 깨끗하고 아름답고 순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계율을 지키고 살생하지 말고, (동물 주민)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해요. 우리는 하나이니까요. 우리가 무엇을 하든 온 우주가 볼 수 있어요.

좋아요. 전화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 목소리를 거기서 들을 수 있죠. 왜일까요? 전화선 때문이 아니에요. 내 소리가 그곳으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죠. 선은 단순히 그걸 전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당신 귀로 전할 수 있어요. 아니면 몇 개의 전화선에 단지 대여섯 명만 들을 수 있겠죠. 그러니 TV처럼, TV나 라디오 방송국처럼, 수백만 또는 수십억 명이 그걸 듣고 볼 수 있습니다. 그건 내가 말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소말리아, 러시아, 어디든 내 말을 들을 수 있어요. 그들 영혼이 듣지, 귀로만 듣는 건 아니죠. 좋아요, 그걸 증폭시켜 그들 마음이 듣고 귀로 명확히 듣도록 하려면 텔레비전이나 전화를 사용합니다. 그게 아니면 그 목소리는 처음부터 이미 거기에 있었지요. 아니면 전화가 내 목소리를 어떻게 잡을까요? 과학적 사실만으로 충분한가요? 다른 질문은 없나요? 네, 좋습니다.

(스승님, 하나 더 질문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중국인은 질문이 많네요. 중국인은 질문에 전문가죠. 물어보세요. 좋아요. (제가 알고 있는 불교에서는 『영혼』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왜 『영혼』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하나요? 그걸 사용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네. 기독교는 종종 『영혼』 이라는 단어를 쓰죠) 그럼... (『영혼』이란 말을 쓰죠)

(스승님의 관점에서, 스승님이 믿는 바에 따르면,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차이가 없나요?) 차이가 없습니다. 그 유리컵에 있는 걸 당신은 『수웨이』라고 부르고, 나는 『워터』라고 불러도 돼요. 물론이죠. 중국인은 『수웨이』(물)이라 부르는 데 익숙해요. (하지만 종교적 신념은 전혀 다릅니다) 같습니다. 같아요. (왜냐하면 기독교에서 말하기를...) 설명해 볼게요. 그런 생각은 산스크리트어를 배우지 않아서입니다. 불교는 산스크리트어로 『아트마』라고 합니다. 『아트마』란 영혼이죠. 중국어 『영혼』으로 번역해요. 알겠나요? 아트마 (영적 인식이군요) 영혼이지요. 『영적 인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하트마』라고 하며 『위대한 영혼』이죠.

(기독교에서는 구원받으려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고 하죠) 네. (그렇지 않나요?) 네. (하지만 불교에서는 방금 말씀하셨듯이 자기 힘에 의지해야 한다고 하죠) 『자기 힘』이란 자신이며, 그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우리의 본성입니다. 우린 하나님에게서 왔지요. (네. 하지만 기독교에는 의식이 많습니다) 당연히... (예배하고 기도해야 하죠) 네. (기도해야 합니다) 네. (그건 정말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거죠. 주인과 종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말을 이해했어요. 그럼 내가 물어보겠습니다. 당신의 불교 스님도 절에 가서 부처님을 숭배하라고 말하지 않나요? 마찬가지입니다. 사원에 가서 부처님을 숭배하고 복을 빌잖아요. 둘 다 잘못됐어요.

자신에게 기도해야 해요; 절이나 교회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이 나를 강요해 말하게 하니, 그들이 나를 꾸짖고 외도라고 하겠죠! 그들은 내 말이 틀렸다고 하겠지요. 사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절에 가서 부처님이 되신 것도 아니고, 주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과 소통하시려고 교회를 세우신 게 아닙니다. 그분들이 돌아가신 후에야 사람들이 그 기념관을 지었고, 그 후로 모두가 온종일 모이고... 그 후 점점 더 많은 의식과 기도가 생겨났습니다. 실제로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실 때 그런 일을 하진 않으셨죠. 석가모니 부처님도 내가 읽은 경전에 따르면, 당신을 숭배하거나 향을 피우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만든 겁니다.

(스승님, 저는 그 점에 동의합니다. 저도 예배를 하지 않아요) 아! 좋네요. 그런데 왜 내게 문제를 일으키나요? (저도 공덕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훌륭하군요. 당신은 정말 훌륭해요! 그녀는 이미 깨달았는데도 여전히 내게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계속하는군요. 하지만 당신이 다른 이들을 위해 질문한 것을 알아요. 맞죠? 그래요.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깨달음을 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고통의 바다, 즉 생사의 순환에서 벗어나길 바라기 때문이죠) 네, 그렇죠. 공덕을 요구하는 건 영원한 믿음이 아닙니다. 네, 단지 사소한 것들이죠. 게다가 그런 공덕을 누리려면 다시 돌아와서 환생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네. 이제 모든 걸 이해했군요. (아니요. 스승님에게서 더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네. 더 좋은 것은 바로 당신이 말한 것, 즉 고통의 바다에서 해탈하는 것입니다. 이걸 추구하려면, 우린... 본성을 깨닫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세상을 버리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뭐라고요? (세상이 싫어 버리는 것, 고통을 인식하여 그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질려서 버리고 떠나는 것을 뜻하죠) 깨닫고 나면 이 세상을 미워하지 않지만, 집착하지도 않을 겁니다. 우린 중도가 될 거예요.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죠. 배가 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잠자고, 돈이 없으면 벌러 갑니다. 하지만 우리의 내면에는 돈이나 잠, 음식, 자녀, 남편, 아내, 친척, 친구와 무관한 다른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원합니다. 우리는 세세생생 그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처음부터 우리에게 있었는데, 바로 진아이며 완전히 해탈했죠. 우리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걸 분명히 압니다. 네, 그것을 찾은 후 우린 고통의 바다에서 해탈합니다. 사실, 우린 원래 해탈해 있었지요. 당신은 그걸 이해합니다. 괜찮습니다.

(만약 우리가 부모님이나 아내, 남편, 자녀, 다른 모든 사람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우리 마음이 외로워질까요?) 아니요! 난 당신의 진아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 감정이나 관계에 관해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부모님을 여전히 똑같이 사랑하죠. 그건 감정이에요. 그 부분은 당신의 진아와 다릅니다. 내 말을 이해하나요? 진아는 모든 걸 포괄해요. 내 말은, 진아를 찾은 후에는 부모님이 안 계셔도, 돈이나 어떤 관계가 없더라도 진아를 잃은 게 아닙니다. 당신은 여전히 행복해요. 자신이 누구인지 여전히 이해하고 아는 겁니다. 내 말은 그런 뜻이에요. 깨닫고 나면 모든 관계를 끊게 된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왜요? 우리 사람도 여전히 결혼하고 자녀가 있어요.

진아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위에 있습니다. 모든 경계, 모든 물질적 재산, 세상의 모든 관계를 초월하죠.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남자 친구가 없더라도,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여전히 똑같이 깨닫고 행복해질 수 있어요. 행복하기 위해 재산이나 자녀, 배우자에게 의존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말은 그런 뜻이죠. 관계를 유지해도 괜찮아요. 깨달은 후에 모든 것을 끊는다는 의미가 아니죠. 그렇지 않으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죠? 당신이 더 잘 이해할 거로 생각해요.

(그럼 스승님, 중생과의 인연에 대한 스승님의 견해는 어떠신가요?) 중생에 대한 내 견해요? (중생과의 인연이요) 무슨 뜻인가요? (모든 중생과의 인연요. 인연이요. 사람 간의 관계요) 나와 사람들, 또는 그들의 진아와의 관계를 말하나요? (이 세상에서 사람 사이의 인연에 대한 스승님의 견해는 어떠신가요?) (예를 들어, 아버지와 저의 인연 같은 거요) 알겠어요. (어머니 또는 스승님과 저의 인연이요. 급우들과 친구와 저의 관계 같은 거요) 이건 당신이 전부 알죠. 그건 과거 생의 업과 관련 있습니다… (업의 영향이요) 네, 그래요. 전생이죠. 이를테면 과거에 서로를 깊이 좋아했거나… 또는 단순히 매우 친한 친구였더라도 서로를 많이 도와주고 진심으로 좋아했습니다. 다음 생에는 부모와 자식이나 엄마와 아들, 남편과 아내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뭐라고요? (이게 바로 업이 쌓인 건가요?) 네, 그래요, 네. 업이 쌓이고 계속 끌려다닙니다. (타고난 성향에 따라 계속 쌓여가는 거군요) 네, 그래요, 하지만 그건 우리의 진아와 무관합니다. (그렇군요, 스승님) 그 정도는 아니에요.

(업은 우리 마음과 관련이 있나요? 없나요?) 나는 우리 본성을 말합니다. (본심요) 원래 그것은 어떤 것과도 관련이 없어요. 그것은 우주 전체와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원래 우리는 혼자서 존재합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원래 우리는 하나였죠. 이 환상의 세계에 떨어진 후, 우리는 각자 이름과 가정을 가진 개체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은 항상 당신을 『왕 부인』으로 알았죠. 당신은 태어나 자라며, 특정 상황에 갇혀서 자신을 그렇게 인식하게 됩니다.

(그럼, 이 존재들과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생사의 고통스러운 바다에서 계속 환생하게 될까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달아야 하고 그것을 꿰뚫어 봐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라는 것, 이 몸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래서 우리는 깨달아야 하며, 우리 자신의 위대한 자아, 우주와 하나인 본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책임입니다.

(그럼, 남들과의 인연에 관해서, 스승님은 여전히 남들과 인연을 맺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이미 맺어져 있습니다. 왜 『당연히』 맺나요? 어디를 가든, 우리는 항상 저절로 인연을 맺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무엇을 하길 원하든 반드시 부모가 있어요. 나처럼요.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다른 사람들처럼요.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죠. 이 환상세계에 와서 이 연극과 게임을 하면 그 인연은 존재합니다. 이런 인연을 갖는 것은 인연이 없는 것과 같아요.

깨달은 사람에게는 인연이 있든 없든 마찬가지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오로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을 뿐이죠. 그들이 없으면 죽을 겁니다. 연인이 없으면 울부짖으며 죽거나 자살할 수도 있습니다. 깨달은 사람에게는 있든 없든 마찬가지입니다. 인연이 있으면 그 연극에서 자기 역할을 맡아 연기하면 됩니다. 역할일 뿐입니다. 그게 다죠. 이건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설명할 때 나는 완전히 이해하지만, 당신은 이해하기 힘들겠죠. 나는 매우 잘 이해하고, 내가 무얼 말하는지 알아요. 그걸 매우 명확히 봅니다.

사진 다운로드   

더보기
모든 에피소드 (10/12)
1
지혜의 말씀
2025-07-28
1506 조회수
2
지혜의 말씀
2025-07-29
1280 조회수
3
지혜의 말씀
2025-07-30
1181 조회수
4
지혜의 말씀
2025-07-31
1207 조회수
5
지혜의 말씀
2025-08-01
1023 조회수
6
지혜의 말씀
2025-08-02
1022 조회수
7
지혜의 말씀
2025-08-04
917 조회수
8
지혜의 말씀
2025-08-05
831 조회수
9
지혜의 말씀
2025-08-06
1194 조회수
10
지혜의 말씀
2025-08-07
564 조회수
11
지혜의 말씀
2025-08-08
418 조회수
12
지혜의 말씀
2025-08-09
245 조회수
더보기
최신 영상
지혜의 말씀
2025-08-09
245 조회수
스승과 제자 사이
2025-08-09
488 조회수
37:06

주목할 뉴스

1 조회수
주목할 뉴스
2025-08-08
1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5-08-08
418 조회수
우리 주변의 세상
2025-08-08
1 조회수
동물의 세계: 더불어 사는 세상
2025-08-08
1 조회수
스승과 제자 사이
2025-08-08
682 조회수
공유
공유하기
퍼가기
시작 시간
다운로드
모바일
모바일
아이폰
안드로이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GO
GO
Prompt
OK
QR코드를 스캔하세요 ,
또는 다운로드할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선택하세요
아이폰
안드로이드